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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tory + 이런 저런 이야기

이런 게 직업병인가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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직업병이란 뜻을 알아보면 '한 가지 직업에 오래 종사함으로써 그 직업의 특수한 조건(환경, 작업상태 등)으로 인해 생기는 병'이라고 되어있습니다. 열악한 환경에서 일하느라 건강에 치명적인 직업병을 얻는 안타까운 경우도 있지만, 꼭 그렇지 않더라도 일을 하는 사람이라면 저마다 하나씩은 직업병 비슷한 강박을 갖고 있기도 합니다.

화이트해커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하면 "휴대폰 패턴 풀 수 있어요?"라고 묻는 질문에 진저리를 내거나,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주변 지인에게 "이번에 가게를 냈는데 간판 디자인 좀 해줘"라는 부탁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는 직업병 축에도 끼지도 못 할 겁니다. 친구들이 보내는 채팅 창에 틀린 맞춤법이 유난히 신경 쓰이는 출판 편집자, 삐쭉 삐친 상대방 머리카락이 마음에 안 드는 미용사처럼. 각자마다 오랫동안 해왔던 본인 업(業)과 관련된 병(?)적인 강박은 애써 감추려 해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.

홍보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다 보니 잘못 인쇄된 회사 CI(Corporate Identity) 마크를 보거나, 영상 자막 속 어색한 말투를 보면 너무나도 맘에 걸립니다. 행간이 잘 안 맞는 문서를 보거나, 정확한 뜻이 아닌 표현 오류를 보면 은근 신경 쓰입니다.

얼마 전 버스를 타서 운전기사 바로 뒷자리에 앉았을 때 일입니다. 기사님 자리 뒤편에 붙어있는 운수회사 공지문을 무심코 보니 눈이 거슬리고 마음이 편치 않는 것입니다. 



      청결한 환경을 위해 티끌만한 휴
      지 한 조각도 스스로 책임질 줄 아
      는 문화인이 됩시다.

작성자가 엔터키를 치다 말았는지, 혹은 글자 크기를 조정하다가 다음 줄로 그냥 넘어갔는지 모르겠지만 문장 줄 바꿈이 어색한 겁니다. '휴~~지'도 안 버렸는데, 내가 잘못한 게 아니란 것도 '아~~는'데 너무 답답했습니다. 

     청결한 환경을 위해 티끌만한 휴지 한 조각도
     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문화인이 됩시다.

라거나,

    청결한 환경을 위해
    티끌만한 휴지 한 조각도
   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
    문화인이 됩시다.

로 너무 고치고 싶었습니다. ㅠㅜ

결국 버스 내릴 때까지 말 그대로 좌불안석이었습니다. 내가 쓴 문서도 아닌데, 왜 하필이면 그 자리에 앉아버려서는. 참나! 이런 것도 직업병 일종인 거겠죠.



버스에 내려서 친구를 만나기로 한 약속장소에 도착했습니다. 손을 씻으려고 화장실에 갔다가 또 한 번 직업병을 느끼게 됩니다. 비록 화장실은 허름했지만, 부탁의 말을 써놓은 사람 의도를 읽었던 거죠. 

    깨끗이 사용합시다
    깨끗하게 사용해주셔서 고맙습니다

이 두 문장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깨끗이 사용할 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을까요? 게다가 '깨끗이 사용합시다'라고 무서운 명령조 말은 벽에 붙일때도 삐딱(?)하게 건달 다리 떨듯 걸어놨습니다. 같은 뜻의 말이라도 두 가지 버전 문구를 보고 상대방 마음에 더 와 닿을지 고민하고 썼을 겁니다.

 

난 뭔가 콘텐츠를 적을 때 이렇게 고민하고, 거기에 더해서 입장을 바꿔 상대방 마음으로 생각하며 썼는지 반성하게도 되네요.